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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SP 2024. 7. 13. 11:22

나는 존경하는 사람이 있다.

그 사람을 처음 만났을 때부터 같이 있는 시간 동안 매번 신선했다. 그 사람의 말투, 행동, 생각, 사소한 습관까지 모두 닮고 싶었다. 그 사람과 이야기를 하면, 나의 생각이 정리되고, 논리적인 생각을 할 수 있는 방법의 조각을 툭툭 내뱉는다. 그래서 그 사람과 이야기를 할 때면, 나는 그 사람의 모습을 노트에 적고, 계속 생각하며 기억하려고 노력했다. 어떤 문제가 나에게 닥쳤을 때, ' 그 사람이었다면, 어떤 행동을 했을까? ' , ' 그 사람이었다면, 어떤 말을 했을까?' 하며 그 사람의 입장이 되어 생각해 본다. 그러면 나의 판단보다는 좀 더 직관적이고 합리적인 판단이 된다. 그게 어엿 6년이 되어도, 아직 그 사람의 조각이 나의 행동과 생각에 남아있다.

중학교 입학 전에 다른 지역으로 이사를 가게 되어서 새로운 사람들과 새롭게 추억을 만들어야 했다. 처음에는 모든 게 어색했지만, 나름대로 적응하려고 말도 많이 걸어보고, 새로 사귄 친구 집에 따라가보기도 하고, 독서실도 같이 다니면서 적응하려고 노력했다. 중학교 1학년 어느 날, 짝의 필기노트를 봤는데 짝의 글씨체가 정말 아름다웠고, 예뻤고, 귀여웠다. 내가 알고 있는 긍정적인 형용사를 다 가진 그런 글씨체였다. 한 달 동안, 짝의 필기체를 힐끔힐끔 보며 무작정 따라 했다. 그 친구가 자기와 비슷한 필기체를 보고 기분 나빠할 것 같아서, 늘 나의 필기노트를 숨기고 다녔다. 그렇게 여러 짝들의 필기체를 비교하며 예쁜 필기를 찾으면서 1학년을 보냈다. 1학년 마지막 달, 정말 특이한 필기체를 가진 친구와 짝이 되었다. 그 친구의 이름은 '림'. 림의 글씨체는 누가 봐도 림의 글씨체라는 것을 알 수 있을 정도로, 정갈하고, 깔끔했다. 마치 '고딕체 '를 프린트한 것 처럼. 한 달 동안, 나는 다른 짝을 따라 했던 것처럼 림의 글씨체를 보며 따라 했다. 그리고 숨겼다. 림과 짝이 된 지 3주 정도 지났을 때, 그 친구가 나의 필기노트를 봤다. 그리고 나에게 화를 냈다. 평소에도 자기주장이 강했던 친구가, 자기주장에 약한 나에게 화를 냈을 때, 나는 미안한 감정보단 범죄를 저지른 것 같은 마음이 컸다. 심장은 빠르게 두근대고, 입에서는 나도 모르게 거짓말을 막 뱉었다. "이거 너 따라 한 게 아니라, 다른 애거 따라 한 거야". 지금 생각해보면 말도 안 된다. 어영부영 린에게 글씨체를 안 따라 하겠다고 하고 간신히 그 상황을 벗어났다.

1학년부터 3학년까지 같은 반이었던 친구가 있었다. 그 친구의 이름은 '민'이다. 민이는 쉬는 시간 책상에 두꺼운 파란색 '대치동 영어 단어집'을 늘 올려두고 외웠고, 단어장을 갖고 오지 못한 날에는 핸드폰에 찍어서 계속 보고 있었다. 체육, 미술, 음악 같은 예체능 시간에는 '투명 클립보드'에 프린트된 문제집을 들고, 수업 활동을 하지 않는 시간에 가져온 문제집을 풀었다. 공부하는 민의 모든 부분을 닮고 싶었다. 민의 글씨체는 물론, 필기구 활용은 '깔끔', '심플', 이 두 단어가 어울리는 완벽한 친구였다. 민이는 'MUJI' 제품이 깔끔하고 심플하다며 내게 늘 추천했고, 즐겨 쓴다고 했다. 그 당시에 민이가 쓰던 필기구가 너무 탐나고 학교에서 쓰고 싶었지만, '1학년 때 느낀 것처럼, 내가 민이의 필기구를 따라 하면 민이는 나에게 화를 내겠구나.'라는 생각에 민의 필기류를 따라 하지 않았다. 그리고 고등학생이 되고 그 친구와 다른 학교가 된다면 민의 필통부터 투명 클립보드까지 다 따라 하겠다고 다짐했다.

1학년 첫 시험을 준비하고 있었다. 시험 약 2주 전에는 쉬는 시간에 늘 교무실 입구에서부터 문제집을 끼고 있는 학생들이 줄을 지어 서 있었다. 처음에는 왜 줄을 서고 있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그리고 어느 순간 나도 그 줄에 껴있는 학생 중 하나가 되었다. 그 줄은 문제집을 풀거나, 교과서, 수업 중 모르는 것을 쉬는 시간에 물어보려고 스는 줄이었다. 사실 처음에는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문제집을 풀고 모르는 문제가 나오면 답지를 보고 혼자 해결하고, 수업 시간에 헷갈리는 부분은 '다른 친구들은 다 이해했는데, 나만 모르는 거니까 그냥 가만히 있어야겠다' 하며 그냥 넘기면 되니까. 하지만, 다른 친구들이 굳이 쉬는 시간에 교무실에 가서 선생님께 질문을 하니까 나도 한번 해보고 싶어졌다. 그래서 문제집을 풀다가 헷갈리는 문제가 있을 때 나 혼자 답지를 보고 해결하지 않고, 무작정 선생님께 질문을 했다. 나의 첫 질문이다. 처음 질문을 했을 때, 나는 '선생님이 나를 이것도 모르는 바보 같은 학생이라며 핀잔을 주거나 무시할 거다' 하는 생각에 무섭고 걱정했지만, 내 예상과 반대로 선생님은 내게 너무나도 친절하게, 답지에도 있지 않았던 풀이법과 예시를 들어주셨다. 왠지 선생님과 더 가까워진 것 같고, 내가 열심히 공부하는 학생으로 비친 것 같아 정말 뿌듯했다. 왜 쉬는 시간마다 다른 학생들이 질문을 하는지 이해됐다.

나의 중학생 생활은 나의 정체성에 혼란이 왔던 시기였다.

나는 하얀 도화지였다. 내가 좋아하는 것, 내가 싫어하는 것, 내가 원하는 것, 내 성격도 몰라서 다른 사람의 것을 따라하며 남의 색깔을 나의 하얀 도화지에 칠했다. 색깔을 칠하는 과정에서 난 나의 색깔을 찾지 못했다. 중학교 졸업식이 된 다음 날, 나의 도화지를 다시 펼쳐봤다. 밝은 색깔, 어두운 색깔, 강한 채도, 낮은 채도가 뒤섞인 그림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 여러 색깔들이 지금의 나의 색깔을 찾는데 큰 도움을 주었다. 만약 세상에 어떤 색깔이 있는지 알지 못한다면, 나는 분명 중학교 졸업 후 고등학교에 입학하고 새로 칠해야 할 내 도화지에 어떤 색깔을 칠해야 하는지 혼란스러웠을 것이다. 하지만 여러 사람들을 만나고, 그 사람의 색깔을 확인하고, 직접 내 도화지에 칠하면서, 세상에 어떤 색깔이 있는지 알았다. 그리고 나는 그동안 모았던 많은 색깔 중 내가 좋아하고, 닮고 싶은 색깔을 골라서 나의 새 도화지에 직접 칠하기만 하면 된다. 앞으로 나아가는 과정 속에는 성공, 실패, 방황 등 여러 상황이 가끔 예상치 못하게 닥친다. 하지만 돌아보면 그 모든 게 앞으로 다가올 상황을 나아가기 위한 디딤돌이다.

(원본 2020. 5. 17. 1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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